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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자리 찾아주기’ 언론이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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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24일 오후 2시20분 KBS 보도국 편집회의. IMF 외환위기 극복 방안의 하나로 이색 아이디어가 나왔다. 집집마다 장롱 속에 보관 중인 금반지를 공짜로 나라에 기부하라면 호응도가 낮으니 장롱 속 금반지 등을 사서 모아 비싼 값에 국제 금시장에 팔면, 국민들 입장에서는 금반지를 비싸게 팔면서도 달러가 손쉽게 국내에 들어와 외환위기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한 경제부 기자의 제안이었다. 누구나 금반지를 비싸게 팔면서 나라도 구할 수 있다는 애국심에 호소하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범국민적 캠페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낙관론이 뒤따랐다. 보도국장으로서 이왕이면 성탄절인 25일 밤 9시뉴스부터 ‘금 모아 수출해서 애국하자’는 기획 리포트를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성탄절 밤 9시뉴스 첫 리포트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금반지 등을 어디서 어떻게 팔 수 있느냐고 묻는 전화가 보도국에 쇄도했다. 무언가 위기탈출의 길을 찾던 국민들 사이에 ‘금 모아 수출하자’는 캠페인이 활로를 제공하면서, 한민족 특유의 응집력이 서서히 꿈틀거리며 활화산처럼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금 모으기 운동 참가자 198만4000명, 금 수집량 136t, 수출대금 11억1100만 달러. 외환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되었다. 당시 우리는 금 수출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다. 추운 날씨 속에 장롱 속 금붙이를 들고 접수창구에 몰려드는 인파야말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인의 응집력과 저력을 세계에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2009년 1월 5일 오전 8시30분 KBS1 라디오. 미국인 인요한 객원해설위원은 또렷또렷한 한국말로 “10년 전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는 신이 났는데, 지금은 한국의 의사당 폭력사태가 연일 세계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는 심경을 털어놨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IMF 외환위기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금 모아 수출해서 해결될 만큼 간단하지도 않고 끝도 안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수십 년 만에 겪어보는 최악의 실업률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임금을 낮추더라도 고용을 늘리자는 ‘일자리 나누기’ 운동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특히 청년실업 해결 방안으로 미국에 5000명 등 해외 1만 명, 공공부문 3만 명, 기업 2만5000명 등 청년인턴 일자리 7만 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실업문제는 정부의 힘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기업의 투자확대와 고용증대만 기대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급랭하는 경기침체로 자꾸 움츠러드는 국민의 마음을 녹여줄 만한 국민적 캠페인이 필요할 때다.
그 일환으로 ‘일자리 찾아주기’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자영업자 모두가 어렵더라도 일자리를 줄이기보다 조금씩 늘리고, 언론은 보다 적극적으로 구인·구직 취업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일자리 찾아주기에 앞장서야 한다.
며칠 전 IPTV 3개 사업자가 구인·구직 전문채널인 ‘일자리방송’을 이른 시일 내 런칭 서비스하기로 합의하고, IPTV의 양방향 서비스를 활용해 구인 기업과 구직자를 서로 연결시켜 주는 매칭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는 고급 전문직 노동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인에게는 사실상 무료 구인광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상파를 비롯한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 방송은 물론 그동안 취업정보의 산실이었던 신문도 ‘일자리 찾아주기’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매체가 나름대로의 특성과 아이디어를 살려 단 한 개의 일자리라도 찾아주는 데도 열과 성을 다한다면, 얼어 붙은 국민의 마음을 녹여 다시 한 번 경제난국 극복의 힘찬 원동력으로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인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은 것이다.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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