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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현장을 가다] IPTV 공부방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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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현장을 가다] IPTV 공부방
영화 보고 영어공부도 하고 방과후 학생들 하나둘 쏙쏙
저소득층 공부방에 IPTV 결합…내년까지 1000여개 이상 개설
영어 제외한 다른 콘텐츠 부족…정부차원 사후관리조직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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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위동 초등학교 꼬맹이들은 심심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오후 1시 반. 부모가 일을 나가고 텅빈 집에서 아이들은 주로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며 놀았다.
그나마 형편이 되는 아이들은 1~2시간 학원에서 공부를 더 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팍팍한 살림살이를 꾸리기에 바쁜 부모님들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결손가정에서 자라는 안타까운 사례도 적지 않았다.
서울 장위동 순복음교회를 이끌고 있는 김정곤 목사가 교회 본당 옆 자그마한 공간을 공부방으로 개조한 것은 지난 2003년. 사교육이 판치는 세상에 매일 천금 같은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교재 살 돈도 없어 문제집을 복사해 김 목사가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을 홀로 가르쳐야 했다. 인근 대학에서 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들도 있었지만 예정된 날짜를 채우고 정해진 학점을 받고 나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1년에 3~4번 자원봉사 대학생 얼굴이 바뀌었다. 체계적인 시스템도, 인력도, 장비도, 돈도 없었다. 의욕만 앞섰던 김 목사는 몇 번의 좌절감을 맛봐야만 했다.
그러던 김 목사는 올해 초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제안을 받게 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가 김 목사가 이끄는 공부방에 IPTV를 설치해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정부가 IPTV 보급 확산을 위해 벌이는 `IPTV공부방` 이벤트였다. 김 목사는 앞뒤 따질 새도 없이 제안을 덥석 물었다.
이런 연유로 지난 8월 초 장위동 순복음교회에서 IPTV 공부방 4호점 개소식이 열리게 됐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김효재 국회의원,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협회 회장, 안성준 LG데이콤 상무 등이 모이고 각종 언론이 총출동한 탓에 기껏해야 중형 아파트 평수를 넘지 않는 공부방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행사 내내 얌전히 앉아 있어야 했던 아이들 30여 명이 입을 모아 칭얼댔지만 김 목사는 감격에 겨워 말을 잊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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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동덕여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IPTV 공부방 담임교사 노릇을 하는 정다온 씨는 "영화가 상영되는 목요일 출석률은 100%에 육박한다"며 "정규 영어 수업에는 종종 결석하는 아이들도 목요일 영화수업만큼은 잊지 않고 찾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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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야 집에서도 홀로 TV로 볼 수 있다지만 아이들이 모인 것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한때 `바보상자` 취급을 받았던 TV가 동네 공부방에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집결체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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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 융합의 결정체인 IPTV가 기술적 진화를 뽐내면서도 `휴머니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옛날 옛적 시골마을 정자 밑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내던 `이야기꾼`이 IPTV 탈을 쓰고 장위동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공부방에 IPTV가 설치된 이후 아이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유은솔 군은 "집에서 혼자 컴퓨터하고 노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모여서 영화 보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3학년 박민지 양은 "따분하게 영어 문법을 배우는 것보다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4학년 조용훈 군은 "집에 일찍 가봤자 심심하기만 한데 형들이랑 TV 보면서 늦게까지 공부도 할 수 있어 무척 재미있다"고 말했다.
장위동 공부방에서 IPTV를 통해 주로 학습하는 것은 `영어` 과목이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3시부터 4시까지는 저학년(1~3학년), 같은 날 4~5시는 고학년(4~6학년)을 대상으로 단어와 문장, 회화를 연습하고 있다.
정씨는 "사교육이 발달되어 있는 곳에선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이들이 영어에 익숙하지만 여기선 그렇지 못하다"며 "그런 점이 가슴이 아파 더욱 열심히 가르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IPTV로 주로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사실 영어 외에 다른 콘텐츠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별다른 교재나 전문 강사가 없이 화면 속 영어 강사 발음을 따라하는 것만으로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수학이나 과학 등 다른 과목도 포괄적으로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콘텐츠도 부족하고 전문 인력도 없다. 공부방을 도와주는 정 선생도 매달 교통비 명목으로 40만원을 주는 것 외에 아무런 보상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도 조만간 끊겨 김 목사는 사비를 털어야 할 판이다.
현재 전국에 설립된 IPTV 공부방은 총 24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내년 말까지 1000여 개 이상의 IPTV 공부방을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김 목사는 보급 확대도 좋지만 내실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시범 설치되어 있는 IPTV 공부방 실태 전수조사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무엇이 부족한지,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를 꼼꼼히 점검해 보는 거죠. 정부 차원에서 사후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별도 조직을 만드는 것도 좋은 생각으로 보입니다."
정씨는 "맞춤형 교재가 부족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털어놨다. 영어 수업 중 발음 따라하기를 위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를 때가 많은데 이때 영어자막이 채널 안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소소한 어려움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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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박양은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박양을 바라보는 정씨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장위동 공부방 꼬맹이들의 꿈이 얼마나 이뤄질지는 어른들의 세심한 배려심 크기에 달려 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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